원호유허비 제천 송학면 문화,유적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비치던 날, 제천 송학면의 원호유허비를 찾았습니다. 도심에서 벗어나 산과 들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고요한 평지 한가운데 낮은 비석 하나가 단정히 서 있습니다. 주변은 논과 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벼 이삭이 파도처럼 흔들렸습니다. 비석 뒤편에는 오래된 소나무 몇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고, 그 아래로 낙엽이 얇게 쌓여 있었습니다. ‘원호유허비(元浩遺墟碑)’라는 글씨가 햇살에 반사되어 은은히 빛났습니다.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 공간이었지만, 그 고요함 속에 오랜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비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신과 학문의 흔적을 품은 장소였습니다.

 

 

 

 

1. 송학면의 들녘을 따라가는 길

 

제천 시내에서 원호유허비까지는 차로 약 20분 거리입니다. 내비게이션에 ‘원호유허비’를 입력하면 송학면 포전리 인근으로 안내됩니다. 도로는 평탄하고, 마지막 구간은 좁은 시멘트길로 이어집니다. 길가에는 감나무와 벚나무가 늘어서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이 부드럽게 흩날렸습니다. 비석 앞에는 차량 두세 대가 주차할 수 있는 작은 공터가 있습니다. 표지석 옆에는 ‘조선 유학자 원호 선생의 유허지’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마을이 가까워도 주변이 매우 조용했고, 바람과 풀잎 소리만 들렸습니다. 가는 길 자체가 이미 한 폭의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2. 단아한 비석과 주변의 조화

 

원호유허비는 크지 않은 비석 하나와 보호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호각은 목조 팔작지붕 형태로, 정면 한 칸 규모의 단정한 구조입니다. 나무 기둥과 흙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고, 지붕 끝에는 풍경이 달려 바람이 불 때마다 맑은 소리를 냅니다. 내부의 비석은 회색 빛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글씨가 깊고 힘 있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비석 주변의 바닥은 돌로 단단히 다져져 있었고, 주변에는 잘 정리된 잔디가 깔려 있었습니다. 소박한 공간이지만, 절제된 균형감과 고요함이 느껴졌습니다. 햇살이 기와 사이로 스며들 때마다 비석의 글씨가 더 선명해지는 듯했습니다. 공간 전체가 작은 사색의 장처럼 느껴졌습니다.

 

 

3. 원호 선생과 유허비의 의미

 

원호유허비는 조선 중기의 학자 원호(元浩, 1563~1633)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원호 선생은 충북 제천 출신으로, 경학에 밝고 예의와 도덕을 중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관직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후학을 가르치며 학문과 인품으로 지역 사회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유허비는 그의 옛 거주지에 세워진 기념비로, ‘그가 머물던 터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비문에는 제자와 후손들이 남긴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그 안에는 ‘몸은 비록 떠났으나 도의는 이 자리에 남아 있다’는 구절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단 한 기의 비석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인품과 정신의 깊이가 오롯이 전해졌습니다.

 

 

4. 고요한 자연 속의 정제된 풍경

 

비석이 놓인 주변은 완만한 들판으로, 사방이 트여 있어 바람의 흐름이 느껴졌습니다. 보호각 뒤편으로는 낮은 소나무숲이 이어져 있었고, 햇살이 가지 사이로 부드럽게 내려왔습니다. 풀잎 사이로 잠자리와 나비가 드물게 날아다녔고, 공기는 한결 맑았습니다. 비석 앞 마당에는 얇은 모래가 깔려 있었으며, 잡초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관리가 잘 되어 있어 공간의 질서가 흐트러지지 않았고, 주변의 자연과 완벽히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아 오히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했습니다. 비석 앞에 서 있으면 바람의 소리마저 예의 바른 듯 조용했습니다.

 

 

5. 인근에 함께 둘러보기 좋은 제천 명소

 

원호유허비를 둘러본 뒤에는 차로 10분 거리의 ‘청풍호반길’을 산책하기 좋습니다. 잔잔한 호수와 산 능선이 어우러진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또한 가까운 ‘의림지 역사박물관’에서는 제천의 유교문화와 인물사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점심은 송학면 인근 ‘산내음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이나 버섯전골을 추천합니다. 제천 특유의 담백한 맛이 여행의 여운을 더해줍니다. 오후에는 청풍문화재단지로 이동해 전통 건축과 문화유산을 함께 감상하면 좋습니다. 하루 일정으로 역사와 자연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코스로, 제천의 조용한 매력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6. 방문 시 참고할 점과 팁

 

원호유허비는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다만 접근로가 좁고 마을길을 통과해야 하므로 차량 운행 시 주의가 필요합니다. 보호각 안의 비석은 손대지 말고, 내부에서는 조용히 관람해야 합니다. 비 오는 날에는 진입로가 젖어 미끄러울 수 있으니 운동화를 권합니다. 여름철에는 벌레가 많을 수 있으므로 긴 옷차림이 편리합니다.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비문에 직접 빛을 비추는 플래시 사용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오전 시간대에는 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비문의 글씨가 가장 또렷하게 보입니다. 이곳은 관광지가 아닌 추모의 공간이므로, 조용히 머무르며 그 의미를 느껴보는 것이 가장 어울립니다.

 

 

마무리

 

제천 송학면의 원호유허비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단정함 속에 깊은 울림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비석 하나와 나무 몇 그루가 전부였지만, 그 안에 깃든 정신은 웅장했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학문과 인격을 존중하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들리는 풍경의 소리가 묘하게 따뜻했습니다. 잠시 머무르는 동안 마음이 고요히 정리되고, ‘배움과 도덕의 근원’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다시 제천을 찾게 된다면, 초여름의 신록 속에서 이 비석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품은 고요한 공간, 원호유허비는 지금도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며 선현의 뜻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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