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렴가옥에서 만난 북촌의 고요한 예술 산책
맑고 선선한 바람이 불던 초가을 오후, 종로구 계동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오래된 담장과 현대식 건물이 나란히 이어지는 사이, ‘배렴가옥’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방문이었지만 어딘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담장 너머로 낮은 지붕선이 보이고, 기와 사이로 낙엽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대문을 열자마자 고요한 공기가 맞이했습니다. 집 안은 한눈에 봐도 정갈했고, 마당에는 배렴 화백의 이름을 알리는 작은 안내문이 서 있었습니다. 사람의 말소리 대신 나뭇잎 스치는 소리만 들려, 도시 한가운데라는 사실이 잠시 잊혔습니다. 예술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라 그런지 공기마저 차분했고, 세월의 냄새와 나무의 질감이 어우러져 특별한 여운이 느껴졌습니다.
1. 골목 끝의 잔잔한 진입로
배렴가옥은 안국역에서 도보로 8분가량 거리에 있습니다. 북촌의 좁은 골목을 따라 걸으면 카페와 갤러리가 이어지는데, 그 끝자락쯤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로에서 멀지 않지만 길이 구불구불해 초행이라면 표지판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주차 공간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인근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담장은 낮고 돌이 고르게 쌓여 있으며, 대문 옆의 나무간판이 눈에 잘 띄어 길을 찾는 데 어렵지 않습니다. 인근의 북촌 가옥들보다 방문객이 적어 상대적으로 한적합니다. 오후 시간대에는 햇살이 담장 위로 길게 드리워져, 입구부터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길을 걷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면, 멀리서 풍겨오는 나무 냄새와 잔잔한 바람이 이곳의 시작을 알려줍니다.
2. 집 안의 구조와 정원의 흐름
대문을 지나면 곧바로 작은 마당이 펼쳐집니다. 바닥에는 고운 자갈이 깔려 있고, 중앙에는 오래된 회화나무가 한 그루 서 있습니다. 마루가 ㄱ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어 시선이 자연스럽게 회랑을 따라 이어집니다. 방마다 문턱이 낮아 움직임이 부드럽고,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루 끝에 앉으면 발밑의 나무결이 미세하게 느껴지고, 그 아래에서 바람이 스며나옵니다. 벽면에는 배렴 화백의 작업 흔적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정갈하게 걸려 있습니다. 인테리어는 단순하지만 각 요소가 서로 어긋남 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천장의 들보와 창틀, 문살의 각도까지 균형이 잡혀 있어 오래된 구조물의 미학이 살아 있었습니다. 정원에는 소박한 돌계단이 이어져 있고, 그 옆에는 물기가 남은 항아리가 놓여 있어 생활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전해졌습니다.
3. 예술가의 흔적이 깃든 집
배렴가옥은 단순히 전통가옥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예술가의 삶이 스며 있는 공간으로서 의미가 큽니다. 배렴 화백은 이곳에서 창작과 생활을 병행했다고 합니다. 내부에는 그가 사용하던 붓, 안료통, 그리고 스케치 일부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화실로 쓰이던 방의 벽면은 다른 공간보다 약간 어두워, 빛의 방향을 세심하게 조절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부드럽게 번지며 벽에 미묘한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정지된 듯 고요했고, 작품을 그리던 당시의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단청이나 장식은 거의 없지만, 그 절제미가 오히려 예술가의 정신과 닮아 있었습니다. 목재의 질감, 마루의 온기, 그리고 방 안의 빛이 함께 어우러져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4. 담백한 배려가 있는 공간 구성
배렴가옥의 편의시설은 단출하지만 섬세했습니다. 신발을 벗는 자리마다 발판이 놓여 있었고, 안내문이 눈높이에 맞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조명은 과도하지 않고 은은하게 퍼져, 공간의 질감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관리인 한 분이 방문객의 질문에 차분히 답하며, 건물의 세부 구조에 대한 설명을 짧게 덧붙였습니다. 내부에는 작은 의자가 두세 개 놓여 있어 잠시 머물러 주변을 관찰하기 좋았습니다. 마당 한켠에는 투명한 수반이 있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새소리가 간간이 들려 공간이 살아 있는 듯했습니다. 음료나 판매 코너는 없지만, 대신 정적이 유지되어 건물의 본래 분위기가 온전히 느껴졌습니다. 불필요한 장식이 없는 공간에서 오히려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5. 주변에서 이어지는 북촌 산책
배렴가옥을 둘러본 뒤에는 계동길을 따라 북촌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책을 추천합니다. 도보 3분 거리에 ‘가회동 한옥마을’이 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북촌생활사박물관’이 자리합니다. 두 곳 모두 전통과 생활의 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배렴가옥에서 나와 왼쪽 골목으로 돌면 ‘계동커피공방’이 있습니다. 작은 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와 한적한 분위기에서 차 한 잔 즐기기에 좋습니다. 조금 더 걸으면 ‘정독도서관’이 나타나는데, 정원의 벤치에서 잠시 쉬어가면 좋습니다. 가볍게 한 바퀴 돌아보는 데 한 시간 남짓 걸리며, 각 공간이 서로 연결되듯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예술과 일상의 조화가 북촌 전체에 스며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6. 방문 팁과 시간대 추천
배렴가옥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됩니다. 방문객이 가장 적은 시간은 평일 오후 4시 전후이며, 이때 햇빛이 마루를 비스듬히 비춰 사진 촬영에도 좋습니다. 내부에서는 플래시 사용이 제한되어 있으니 자연광을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므로 편한 양말을 준비하면 좋고, 마당 바닥이 자갈이라 낮은 굽보다는 운동화를 권합니다. 비 오는 날에는 지붕 끝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맑게 울려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예약 없이도 입장이 가능하지만 단체 관람은 사전 문의가 필요합니다. 북촌 일대가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비는 주말에는 오전 이른 시간대가 한적합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조용한 감상을 위한 공간이기에, 긴 대화보다 천천히 둘러보며 느끼는 것이 더 어울립니다.
마무리
배렴가옥은 단순한 한옥 이상의 울림이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건축의 균형미와 예술가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어, 한동안 마루 끝에서 떠나지 못했습니다. 정원에 스치는 바람 소리와 나무의 그림자가 어우러져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했습니다. 재방문 의사는 분명합니다. 다음에는 봄의 햇살이 비칠 때 다시 찾아, 그 빛이 기와와 마루 위에서 어떤 색으로 변하는지 보고 싶습니다. 화려한 장식이 아닌, 고요 속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찾는 이들에게 이곳은 충분한 울림을 주는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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