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암서원에서 만난 계곡의 숨결과 지조가 깃든 고요한 풍경

비가 그친 이른 아침, 포항 북구 죽장면의 입암서원을 찾았습니다.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젖은 흙내음이 공기 속에 퍼져 있었습니다. 산길을 따라 오르자 고요한 계곡 위로 단정한 서원의 지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입구의 돌계단을 밟을 때마다 물방울이 흙 위로 튀었고, 나무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가 고즈넉했습니다. 입암서원은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한 기운이 깃든 곳이었습니다. 기와는 빗물에 젖어 짙은 회색빛을 띠었고, 담장 너머로는 산 안개가 천천히 흘렀습니다. 마루 끝에 앉아 바라본 풍경은 정적과 생동이 공존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세월의 무게가 고요히 스며 있었고, 학문과 절개를 함께 품은 공간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전해졌습니다.

 

 

 

 

1. 찾아가는 길과 접근 동선

 

입암서원은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포항 시내에서 차로 약 50분 정도 소요되며, 내비게이션에 ‘입암서원’을 입력하면 산 아래 주차장까지 안내됩니다. 주차장에서 서원까지는 약 300m 거리로, 계곡 옆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됩니다. 길은 완만하고, 곳곳에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길을 잃을 염려가 없습니다. 초입에는 ‘立巖書院’이라 새겨진 화강암 비석이 서 있고, 서원의 역사와 배향 인물에 대한 설명문이 함께 있습니다. 산속이라 공기가 맑고, 여름에도 바람이 서늘하게 불었습니다. 계곡물 소리가 귓가에 머무는 동안 서원의 지붕이 조금씩 가까워졌고, 나무 문을 열자 안쪽 마당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 서원의 구성과 공간의 인상

 

입암서원은 전학후묘의 전형적인 배치를 따르고 있습니다. 앞쪽에는 강학 공간인 강당과 재실이, 뒤쪽에는 제향 공간인 사당이 자리합니다. 강당인 명륜당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목재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서까래의 결은 곱고 단단했으며, 단청 대신 나무 본연의 색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마루에 앉으면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고, 서원의 담 너머로 푸른 숲이 펼쳐졌습니다. 대청 앞에는 둥근 연못이 하나 자리하고 있는데, 물 위로 떨어진 빗방울이 잔잔한 파문을 만들었습니다. 사당은 강당보다 한 단 높게 위치해 있으며, 제단 위에는 향로와 제기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공간 전체가 질서 정연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습니다.

 

 

3. 역사적 배경과 의미

 

입암서원은 조선 중기 학자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을 배향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김계행은 청렴과 절의의 상징으로, 평생 벼슬을 사양하며 학문과 수양에 힘쓴 인물입니다. 그의 청빈한 삶은 후대 유학자들에게 큰 본보기가 되었으며, 서원은 그 정신을 기리고자 1578년(선조 11)에 세워졌습니다. 이후 조선 후기까지 유림들의 강학과 제향이 이어졌으며, 지방 교육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서원 이름 ‘입암(立巖)’은 ‘바위처럼 굳게 서서 도를 지킨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물러서지 않고, 굽히지 않는 바위의 뜻”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입암서원은 학문 이상의 정신적 지조를 상징하는 공간이었습니다.

 

 

4. 보존 상태와 관람 환경

 

입암서원은 현재 경상북도와 포항시의 관리 아래 매우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서원의 목재 구조물은 주기적으로 방부와 보수 처리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기와와 담장은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마당의 자갈길은 깔끔히 정비되어 있었고, 잡초 하나 없이 청결했습니다. 안내판은 한국어와 영어로 병기되어 있었으며, QR코드를 통해 김계행 선생의 생애와 서원의 변천사를 영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서원 내부는 제향 공간을 제외하고 관람이 가능하며, 대청에 앉아 잠시 머물 수 있도록 평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계곡과 맞닿은 위치 덕분에 여름에도 시원했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습니다. 인위적 꾸밈이 없고, 오랜 시간의 정갈함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5. 주변 명소와 연계 코스

 

입암서원을 둘러본 뒤에는 인근의 ‘운제산자연휴양림’을 방문했습니다. 서원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로, 울창한 숲길과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이어 죽장면의 ‘죽장시장’을 찾아 지역 특산물과 장터 음식을 구경했습니다. 점심은 시장 근처 ‘입암식당’에서 들렀습니다. 산채비빔밥과 도토리묵무침이 담백했고, 직접 담근 청국장이 구수했습니다. 오후에는 ‘죽장계곡’을 따라 산책하며 맑은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입암서원–운제산–죽장시장–계곡 순으로 하루를 보내면 자연과 전통이 조화를 이루는 여정이 됩니다. 서원의 고요함과 숲의 싱그러움이 이어져 하루가 한결 느리게 흘렀습니다.

 

 

6. 방문 팁과 추천 시간대

 

입암서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되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오전에는 계곡을 따라 올라오는 안개가 서원에 스며들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오후에는 햇살이 마루를 비추어 나무결이 따뜻하게 빛납니다. 봄에는 진달래와 벚꽃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계곡 바람이 시원합니다. 가을에는 단풍이 담장을 물들이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겨울에는 눈 덮인 지붕이 정적의 미를 완성합니다. 신발은 미끄럽지 않은 운동화를 추천하며, 서원 내부에서는 정숙을 유지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제향일에는 일반 관람이 제한될 수 있으니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자연의 소리와 나무의 향이 서원의 고요함을 더해주는 순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마무리

 

포항 북구 죽장면의 입암서원은 학문의 향기와 자연의 고요함이 하나로 어우러진 국가유산이었습니다. 화려함은 없지만, 절제된 아름다움과 단단한 정신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빗방울이 남은 돌계단, 고요한 마루, 그리고 계곡의 물소리가 모두 서원의 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시 찾는다면 가을 단풍이 절정인 날, 나무 그림자가 담장을 따라 흐르는 시간에 오고 싶습니다. 입암서원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지조와 배움의 정신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자리였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머물다 보면 마음이 자연스레 정리되고, 조선의 선비 정신이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조용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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